디자이너 듀오 바스쿠 앤 클루크는 진정한 의미의 토털 디자인을 추구해왔다. 건축을 기반으로 시작한 이들의 작품은 작은 문고리부터 그래픽, 인터랙션과 조명을 이용한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무한하다. 일렉트로닉 라운지 음악이 흐르는 사무실에서 이들이 지금껏 진행한 프로젝트를 보면, 지금 사회에 필요한 디자이너의 재능은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1 ‘Breath of Light’(2018) 설치 전경.
2 안드레아스 클루크(왼쪽)와 미하엘 바스쿠(오른쪽).
건축가와 디자이너 혹은 이 둘을 아우르는 어떤 존재. 이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좋을까? 오스트리아 빈과 체코 프라하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바스쿠 앤 클루크’의 포트폴리오를 본 순간 떠오른 생각이다. 서른다섯과 서른넷, 빈 공과대학교 동문인 미하엘 바스쿠(Michael Vasku)와 안드레아스 클루크(Andreas Klug)는 2011년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바스쿠 앤 클루크를 차리고,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들은 오스트리아 정부와 두바이 건설사 등 세계 곳곳에 클라이언트를 둔 종합 디자인 전략 회사인 동시에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할 수 있다. 바스쿠 앤 클루크는 바우하우스의 초석이자 19세기 음악과 미술 등 각 예술 장르를 통합하고자 한 개념인, ‘총체적 디자인’ 혹은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는 ‘게잠트쿤스트베르크(gesamtkunstwerk)’를 추구한다. 그래서 초기에 집중한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영역에서 벗어나 조명과 그래픽, 미디어, 폰트 그리고 이 모두를 합친 전시 기획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이름이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알려진 시점은 iF 디자인 어워드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인테리어 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 부문을 수상한 2012년 이후. 특히 2014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오스트리아 컨템퍼러리 디자인관의 디자인을 맡아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밀라노의 옛 교회에서 전통적 공간의 신성한 메시지와 현대의 조명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준 것. 이후 2015년 국제조명박람회 유로루체(Euroluce)에선 보헤미안풍의 거대한 샹들리에가 어둠 속에 가득한 풍경이나 작은 유리 조명 다발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연출하는가 하면, 옛 사보이 왕가 전용 기차역 공간을 새하얀 오브제로 채워 방문한 이들에게 마치 상상 속 거품을 밀고 나아가는 듯한 착각과 체험의 즐거움을 제공했다. 이렇듯 전통적 공간에서 밝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이들의 강점이다.
3 ‘Carousel of Light’(2018). 이들은 진주처럼 보이는 조명 캡슐을 즐겨 사용한다.
4 일명 ‘펄 커튼(Pearl Curtain)’. 드라마틱한 인테리어는 이들의 시그너처 디자인이다.
유럽에서 특히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바스쿠 앤 클루크를 디뮤지엄의 초청으로 올봄 우리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지난 5월 19일 오픈한 그룹전
5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프레치오사 라이팅의 조명 부품.
6 'The Contours of Pearl Wave’ 설치 전경.
영민한 이들은 전문 분야가 확실한 파트너나 제조사가 필요하다는 것도 금세 알아차린 듯하다. 2016년부터 바스쿠 앤 클루크는 체코의 유서 깊은 조명 회사 프레치오사 라이팅(Preciosa Lighting)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하고 있다. 이 회사는 16세기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장인의 손을 거쳐 전통적이고 화려한 샹들리에와 조명을 만들고 있다. 자사의 유구한 역사와 기술, 지식을 총동원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왔는데, 바스쿠 앤 클루크를 만나면서 프레치오사 라이팅은 컨템퍼러리 디자인 회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번에 우리나라에 온 설치 작품 ‘Breath of Light’(2018)가 이들의 만남에 따른 시너지를 보여주는 좋은 결과물이다. 2018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이듬해인 2019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대상(Best of the Best)을 수상했다. 관람객이 유리구 속에 숨은 센서에 숨을 불어넣으면 그 숨이 센서에 닿는 시간에 따라 투명한 조명이 차례로 빛을 발하며 신비한 소리를 낸다. 샹들리에 속 촛불을 입으로 불어 끄던 옛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고 한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디자이너인 동시에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는 바스크 앤 클루크. 지금까지 그 두 역할의 접점을 찾기 위한 과정에 시행착오는 없었을까? 답은 그들의 작품 분위기처럼 명료했다. “설치미술만큼은 작가 스스로 작품의 관람객이 되므로 가장 까다롭고 만족시키기도 어렵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위한 기초 조사부터 레이아웃, 효과적인 프로그램 설정값에 맞추기 위한 세부 기준도 정해야 하죠. 한편으론 예나 지금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워요. 그래서 그간의 작업 과정을 시행착오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다음 작품의 키워드는 ‘소리(sound)’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계획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그래온 것처럼 향후 10년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알 길이 없다는 거죠.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풀어낸 새롭고 흥미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랍니다. 지금처럼 호기심과 열정,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부정적 감정과 두려움을 피한다면 가능할 거예요.”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제공 바스쿠 앤 클루크, 프레치오사 라이팅
진행 협조 디뮤지엄
Copyright ⓒ 노블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