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계에 끼여 죽었는데⋯법원 "소리 지르지 않았으니 '사고사' 아니다"

[단독] 기계에 끼여 죽었는데⋯법원 "소리 지르지 않았으니 '사고사' 아니다"

로톡뉴스 2019-12-16 12:27:02 신고

그날 청주는 따뜻했다. 한겨울 추위가 잠시 주춤하고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온 날이었다. 공장 안은 포근했지만, 햇살은 차가운 기계 안에 쓰러진 그에게 닿지 않았다.

지난 2017년 2월 1일, 충청북도 청주의 한 공장. A씨(30)는 평소와 다름없이 비좁은 기계 안에서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포장하고 있었다. 원칙상 기계 전원을 끄고 2인 1조로 근무해야 했지만, 현장에선 이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았다.

A씨는 홀로 전원이 켜진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몇 시간 뒤 A씨는 기계에 끼인 채 무릎을 꿇고 엎드린 모습으로 동료들에게 발견됐다. 미동 없는 그의 곁에선 기계만 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 모양대로 찌그러진 기계⋯ 1심 재판부 "관리 부실로 인한 인재(人災)"

회사와 회사 대표 최모씨가 재판에 넘겨졌다. 혐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었다.

유죄가 유력한 재판이었다. 사망한 A씨는 기계에 끼인 채 발견됐고, 그를 압박한 기계는 사람 모양대로 찌그러져 있었다. 조사 결과 A씨를 압박하면서 생긴 변형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측은 '안전 관리 부실로 빚어진 인재'라고 주장했고,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유죄였다.

2심 재판부는 왜 그의 죽음을 '인재(人災)'로 보지 않았나

하지만 2심은 달랐다. 회사 측은 사망 원인에 대한 '다른 가능성'을 들고나왔다. "A씨 사망이 기계 압박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고 발생 장소를 정확하게 비추는 CC(폐쇄회로)TV가 없다는 점이 회사의 이런 주장을 가능하게 했다.

근거 ① 기계의 압박에 의한 사망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회사 측은 '심장부정맥이 있었다'는 부검 소견을 토대로 "A씨가 (기계 압박이 아닌) 심장부정맥으로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이게 통했다.

재판부는 "30대 젊은 남성이라고 해도 갑자기 심장부정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며 "(기계의) 압력이 가해졌다 할지라도 이미 피해자가 심정지로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면 사망과는 관련이 없다"고 판시했다.

사체에 '압박 소견'이 있었다는 부분도 "사망한 이후에 압박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근거 ② 5년차의 숙련된 노동자였다

A씨가 긴급상황 시 기계를 멈출 수 있는 조작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고려됐다.

회사 측은 "동종업계 5년 차 숙련자인 피해자가 (기계가 움직이며 위급했던 상황이라면) 조작기로 즉시 기계를 멈출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또한 "동료들은 구해달라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소리도 안 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계에 짓눌려 사고가 났다면 A씨가 소리를 지르거나 버튼을 눌렀을 텐데, 그런 정황이 없었으므로 '다른 가능성'에 의한 사망일 수 있다는 판결이었다.

또한, 2심 재판부는 '2인 1조' 원칙이나 '전원 내리고 기계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지 않은 책임을 노동자인 A씨 개인에게 돌렸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 "회사 책임이 더 크다"고 한 1심 재판부와는 달랐다.

결국 청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윤성묵 부장판사)는 지난달 21일 회사 측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현장 상황은 고려 안 하고⋯재판부의 단편적인 결과 해석

2심 재판부의 판단 배경에는 이런 논리가 깔려 있다. "베테랑 근무자였던 A씨가 초보적인 실수를 했을 리 없다." 이런 논리는 즉각 기계를 멈출 수 있는 조작기를 작동시키지 않았다는 부분을 검토하면서 두드러진다.

하지만 산재 사고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해석"이라고 지적한다.

노동 사건을 많이 다뤘던 과거 공안부(현 공공수사부) 출신 변호사는 "텍스트로 정리된 사건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벌어지나' 싶지만, 실상 사고가 일어나려면 온갖 나쁜 경우의 수가 겹쳐서 일어난다"며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사법부가 자세히 살피지 않아,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2심 재판부가 주요 근거로 삼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무죄라는 판결이 무엇보다 아쉽다"며 "조금 과장해서 재판부의 그런 논리대로로면 어떤 사건도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Copyright ⓒ 로톡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