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엮이면 지옥"… 내년엔 '외로운 인싸'가 뜬다

"타인과 엮이면 지옥"… 내년엔 '외로운 인싸'가 뜬다

이데일리 2019-11-06 00:35:00 신고

2020년을 전망하는 ‘트렌드 분석서’가 일제히 ‘혼자’를 조명했다. 연결은 돼 있으나 끈끈하진 않은 연대, 가격·디자인·기능도 아닌 ‘내 취향’이 가장 중요한 소비, 감정노동보단 낫다는 외로움이 특징이다. 한 줄로 정리해보면 “내년엔 ‘외로운 인싸’가 ‘느슨한 유튜브’에서 ‘혼템’을 판다”쯤 된다(이미지=이데일리DB).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 올해 한국인을 크게 움직인 두 가지라면? ‘일본 불매운동’과 ‘유튜브’다. 그런데 내용이 다른 이들 영역에 묘한 공통점이 보인다. ‘느슨한 연대’란 거다. 무슨 말이냐. 연결은 돼 있으나 긴밀하진 않고, 동질감은 있으나 끈끈하진 않다는 뜻이다. 얼굴을 맞대는 것보다 SNS 맞대는 걸 선호하고, 손잡는 것보다 와이파이 잡는 걸 좋아하고. 그렇다고 연대가 느슨하니 소극적일 거라 짐작하는 건 큰 오산.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드러내는 덴 망설임이 없으니까.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불매운동에 나서고 멀쩡한 직업이 있어도 유튜버를 꿈꾸지 않는가. 그런데 이 ‘적당한 거리감’이 한때의 유행은 아닌 모양이다. 갈수록 단단해질 태세다.

#2. ‘트친’ ‘인친’ ‘페친’. 참 친구도 많다. 그런데 만남은커녕 친구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비록 이런 관계라도 불문율은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매시간 드러낼 궁리를 한다. 유명 맛집을 찾아선 분위기부터 탐색한다. 사진거리만 있으면 ‘맛은 용서가 된다’. 인증을 못할 바엔 안 가고 말고. 그러면서 이 모두가 ‘인싸’(인사이더의 준말·센말)가 되기 위한 노력이란다. 무리에 잘 섞여 어울리는 사람 말이다. 도대체 어느 무리에서? ‘혼자 사회’다. 싱글은 싱글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혼자만의 시공간’을 찾는다는 거다.

#3.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정치도 경제도 아닌 사람.” 그래도 애는 썼던 때가 있었다. 언저리를 서성거릴지언정 함께하려고 했던 거다. 이젠 아니다. 차라리 외롭고 만다. “타인과 엮이면 지옥”이란 생각이 점점 강렬해지는 거다. 생각만도 아니다. 실행에 옮긴다. 본방 사수보다 넷플릭스 사수가 필수인 건 아주 흔한 예. 미디어의 ‘방송시간표’대로가 아닌 나의 ‘생활시간표’대로 콘텐츠를 불러들여야 하니까. 소비도 마찬가지. 가격도 디자인도 기능도 아닌 ‘내 취향’에 맞아야 한다. 나를 표현할 수 있다면 돈이 좀 더 들어도 상관없다.

어느 하나도 남의 얘기 같지 않다면 제대로 분석한 거다. 이 모든 장면은 2020년에 더욱 색이 진해질 그림이니까. 이 세 가지를 묶어 한 줄 정리를 하면 이거다. “내년엔 ‘외로운 인싸’가 ‘느슨한 유튜브’에서 ‘희귀 혼템’을 판다!”


△‘혼자 사회’ ‘적당한 거리감’…더 이상 ‘함께’는 없다

이듬해 국내외에서 일어날 일상·문화·소비·비즈니스 동향을 미리 가늠하는 ‘트렌드 분석서’가 올해도 쏟아지는 중이다. 그중 세 권을 골랐다. 라이프스타일 중심으로 세상 흐름을 내다보는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의 ‘라이프 트렌드 2020’, 빅데이터에서 뽑은 핵심어로 일상의 변화를 짚어내는 다음소프트 생활변화관측소 연구원들의 ‘2020 트렌드 노트’, 국내 소비층을 대상으로 이슈를 조사해 정성·정량분석하는 마크로밀 엠브레인 구성원들의 ‘2020 트렌드 모니터’다. 올해 각각의 키워드를 ‘느슨한 연대’ ‘혼자만의 시공간’ ‘외로움’으로 잡았다.

흥미로운 건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들이 점친 내년 전망의 중추가 거의 일치한다는 건데. 바로 ‘나홀로’다. ‘경기침체’를 공통어로 실속형 개별화에 비중을 뒀던 지난해와도 결이 다르다. 한 해 차이로 완전히 ‘독자선언’을 한 듯 보인다.

‘라이프 트렌드’에선 ‘끈끈하지 않아도 충분한’ 혼자의 일상을 세세히 들여다봤다. ‘함께 사는’의 정수라 할 결혼관이 달라진 게 가장 크다고 했다. 이미 ‘결혼은 필수’라고 믿는 비율이 절반 이하다(48.15%·2018). 가족이 해체되는 마당에 조직이라고 버티겠나. 평생직장은 옛말이고 동료는 식구가 아닌데. ‘가족 같다’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우리가 남이가?’ ‘맞다. 이젠 남이다.’ 그렇다고 불행할까. 그럴 리가 있나. 연대가 느슨해지면 내가 더 잘 보이는 법. 개인 취향을 저격하는 시장과 소비가 커질 수밖에 없다. 혼자에 따라붙는 외로움을 해소하는 소비는 필수. 아마존이 반려동물시장에 뛰어든 배경이다.

‘트렌드 노트’는 ‘혼자는 외로운 상태가 아니라 삶을 꾸려가는 태도’란 관점에 방점을 찍었다. ‘혼밥’을 신기하게 여긴 지 5년여. ‘혼’라이프에 따라붙는 신조어만 40여개란다. 점심시간이면 혼자 헬스장으로 향하고, 회식 노래방은 거부하면서 혼자만의 코인노래방은 즐겁다 하고, 주말이면 틀어박혀 드라마를 몰아보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고 했다. 불편한 사회성을 제거해버린 뒤 관심사를 중심으로 그때그때 ‘따로 또 같이’ 사는 방식. 결국 ‘혼자 사회’를 어떻게 함께할 건가 관건이란 얘기다.

‘트렌드 모니터’는 혼자의 후속편이라 할 ‘외로움’에 이미 도달해 있다. ‘외로움의 크기가 삶을 바꾼다’고 단언한다. 이런 거다. 외로움이 커지면 사회성의 재구성을 고려하게 되고 취향사회를 향해 진격하게 된다. 혼자 노는 데 절대적인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이 커지니 교체도 잦을 거고 웹드라마가 뜰 수밖에 없는 구조. 그러니 기업이라면 이런 외로움을 제대로 팔 궁리를 해야 한단다. 감정노동이 싫어 동창회를 마다하고, 자신의 취향을 존중받는 곳을 찾아 단발성 관계를 맺고 끊는. 그래서 회비가 수십만원인 독서모임에도 적극적인 혼자들의 외로움.

△‘외로움’ 파는 콘텐츠·전략 필요해

혼자들을 대하는 대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밀레니얼세대’나 ‘Z세대’를 새로운 소비층으로 주목한 건데. 엄밀히 말하면 ‘새로운’보단 ‘독특한’이 맞을 거다. ‘라이프 트렌드’에 따르면 이들은 명품가방과 에코백을 동시에 소비할 수 있으니까. 고급레스토랑의 파인다이닝 인기만큼이나 편의점 도시락 매출을 끌어올린 주역인 거다. 명분도 확실하다. 비싼 상품을 사기 위해 나머지는 철저히 아낀다는.

이는 ‘트렌트 노트’가 지적한 “애매한 것이 최악”이란 기업전략과 연결된다. 뚜렷한 개성이나 차별이 없다면 차라리 시도를 마는 게 망하지 않는 길이란다. 샤넬 백은 못 사도 ‘치약계의 샤넬’은 욕실에 들이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니까. 섣부른 짐작도 금물이다. 예컨대 1인가구시대니 ‘셰어하우스’나 ‘공유오피스’가 뜰 거란 추측 자체가 어리석다는 소리다. 혼자인 그들이 공유하길 원하는 건 관심사지 사적 공간이 아니라니까.

밀레니엄 이후 20년, 세상은 진짜 ‘혼자’ 가나 보다. 이대로라면 ‘트렌드 분석’이란 것도 가치를 잃지 않을까. 갈수록 파편화할 ‘나홀로 취향’을 앞다퉈 묶어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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