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은 외신의 평에 집착하나_라파엘의 한국 살이 #9

왜 한국은 외신의 평에 집착하나_라파엘의 한국 살이 #9

엘르 2020-03-20 21:00:00 신고

굉장히 당혹스러운 일을 겪은 적 있다. 내가 홍보 대행사에서 일하던 때였다. 당시 고객 중 하나였던 모 대기업의 임원들이 다소 비밀스러운(?) 해외 출장을 떠났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그건 전 대통령이 구성한 비즈니스 대표단이었다. 그들이 돌아온 후 늦은 밤, 해당 대기업의 임원 중 한 명에게서 급한 일이라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Visuals on Unsplash(뉴욕타임스 프레임) , 라파엘 라시드

“이번 출장 관련(물론 우리 기업이 포함된) 뉴스가 〈뉴욕타임스〉 1면에 보도되도록 해주세요.”라는 식의 요구. 말문이 막혔다. 정말이지 그 터무니없는 말에 대놓고 비웃고 싶었다. (아니, 내가 무슨 수로 그런 마법을 부린단 말인가?) 더불어 그 임원은 〈뉴욕타임스〉에 보도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었다. 음, 글쎄. 아마도 속보로 다룰 만큼의 가치 있는 이야기, 통찰력을 겸비한 앵글? 이걸 몰라서 묻는 걸까?

통화의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그 임원은 “위에서 내려온 요청입니다”라는 말로 다시금 이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위’는 청와대를 뜻했다) 위에서 왔건 아래서 왔건, 실현 불가능한 요구였다. 그들의 출장은 〈뉴욕타임스〉가 관심을 가질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 당연히 〈뉴욕타임스〉에 실리지 못했고 해당 기업의 임원은 유감을 표했다.

영화 〈베테랑〉 스틸

출장 건은 아니었지만, 이후 그 기업은 바라던 대로 해외 유명 언론에 의해 언급되긴 했다. 문제는 기사가 비판적이었다는 거다. 그 기사가 출고되자마자 해당 기업은 (역시) 이상한 요구를 해댔다. “기사를 쓴 기자가 당신의 지인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기자에게 우리 회사의 이름을 삭제해 달라고 부탁하세요!”

내 기준엔 비상식적인 요구였지만 기업의 홍보를 대행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 기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부디 나의 고객인 해당 기업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부분을 삭제해 달라고 말이다.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내가 쓴 건 공적인 정보야. 거짓말이 아니라고. 지금 이 통화조차 뉴스가 될 수 있다는 거 알지? 그 기업이 그들에 대한 어떤 부분, 그것도 팩트를 삭제해 달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는 사실 말이야.” 백번 맞는 말이었다. 난 친구에게 제발 우리의 대화에 대한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또) 빌었다. 그렇지 않으면, 해고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Markus Spiske on Unsplash

외신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내가 한국에서 몇 년 동안 접했던 수많은 에피소드 중 고작 몇 가지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과 정부가 국제적인 매체에서 주목받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보통 (그리고 특히)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BBC〉 〈CNN〉을 원했다. 이 매체 중 하나에서 언급되는 것은 일종의 성배와도 같다. 한국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매체’에서 언급된다는 것은 자기 검증의 과정이고, 정당성과 일종의 권한을 부여받는 한 형태나 다름없다. 외신의 말엔 절대적인 힘이 있다. 한국의 무언가가 외신에서 언급된다는 건 경사거나 진실이거나, 둘 중 하나로 여겨진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언론플레이다. 해외의 유명한 매체에서 다룬 정부나 특정 기업에 대한 기사는 국내 언론에 의해 역수입된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식이다.
1. 정부 혹은 기업이 ‘무언가’를 한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인지, 뉴스로서의 가치가 있는지는 상관없다.)
2. 그 ‘무언가’를 글로벌 매체에서 다루게끔 최선을 다한다.
3. 2가 성공한다면, 국내 언론에서 해외 매체가 한국의 ‘무언가’에 주목했다는 종류의 기사를 내보낸다. 여기엔 ‘외신에 따르면’ 같은 문장이 붙는다.
4. 정부 혹은 해당 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이용한다.

최근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외신의 평은 꽤 중요한 게 확실했다. 외신기자만을 대상으로 한 정부 브리핑을 연 것은 물론 며칠 후 외신기자들의 질문과 반응을 모아 특별 영상을 제작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이 영상은 현재 150만 뷰를 훌쩍 넘어섰다) 뿐만 아니라 한국을 칭찬하는 외신의 헤드라인만을 추린 게시물을 트윗하기도 했다. 오해하지는 말자. 나 역시 수십만 번의 검사가 신속히 진행되고 있는 점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계 종사자들에게는 찬사와 감사를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quot;(외신)통신원들! 부디 인터뷰를 부탁 드립니다!quot;라고 적힌 피켓. 사진/ 라파엘 라시드

다만,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해외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 쓰면서 쏟는 시간과 에너지다. 우리에게 ‘수입된 인정’이 정말 필요한가? 재난 위기 사태를 국가나 언론이 팩트 보도 이상으로 선전에 이용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때론 외신의 긍정적 평가에 대한 지나친 욕망은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외신이 한국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했을 경우엔 국내 언론에서 역시 그를 이용한 부정적인 기사가 끊임없이 양산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합법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이번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전 정부 그리고 그 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외신에 따르면’이란 말에 대한 집착은 (그래, 보통은 서양권) ‘선진국’으로부터 인정 욕구, 어찌 보면 열등감에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외신의 말은 100% 진실이거나 타당한 것이라 덮어 두고 믿지 않나. 이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음. 아마도, 사대주의?

라파엘 라시드

외신에 대한 집착은 역으로 한국언론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외신의 기사엔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는 반면 국내 언론엔 깊은 불신을 표한다. (어쩌면 국내 언론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아닐까?) 지난 기사 ‘한국언론을 믿을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에서 이미 논했던 대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국내 언론의 진정성이나 사실성을 의심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맞다. 한국에 대한 외신의 (긍정적인) 평을 인용하는 것이 현재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치 성향을 뛰어넘어 외신의 의견이라면 모두 수용하니까 말이다.

요지는, 각계의 의사결정자들은 그토록 많은 시간을 외신에 집착하는 데 할애하는 것 보다는 외신의 도움 없이도 실제 그들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거다. 이건 국내 언론 환경을 바꾸는 실질적인 변화가 절실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모든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을 선진국이라 알고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오직 한국인들만 그 사실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외신의 평가에 연연한다는 게 그 증거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럴 때는 이미 지났고, 지나야만 한다.


*한국 살이 9년 차, 영국에서 온 남자 라파엘 라시드가 쓰는 한국 이야기는 매주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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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라파엘 라시드 사진 라파엘 라시드/언스플래쉬드/ 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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