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친자만 90명인 '정자 기증왕'의 이야기 part.2

생물학적 친자만 90명인 '정자 기증왕'의 이야기 part.2

에스콰이어 2021-12-05 16:00:00 신고


에센스 역시 페이스북에서 무료 정자 기증자를 찾다가 아리를 발견했다. “어떤 여성이 아리라는 이름을 언급했는데, 찾아보니 ‘이게 가능한가’ 싶더라고요. 더 찾아봤어요. 유튜브도 봤고, 〈머레이쇼〉나 〈닥터 오즈〉 같은 방송에 나온 것도 봤어요.” 에센스는 다른 기증자보다도 아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그는 너무 바빴다. 그사이 다른 기증자들과도 연락을 취해봤지만, 대부분은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탔다. 나머지는 음흉한 목적을 드러내거나, 돈을 요구했다. 에센스와 리앤드라는 그저 아이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그 남성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이 뭔가 지저분하고 불쾌한 일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리는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이 아이를 갖도록 돕죠. 정말 훌륭한 사람이에요. 세상에 생명을 가져다주는 일을 하니까요.” 리앤드라의 말이다.

에센스는 나에게 자신이 구매한 ‘정액 주입 키트’를 보여주었다. 아마존에서 주문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찾기는 어려웠어요. 일부러 아마존이 찾기 어렵게 해놓은 것 같아요. 여성들이 의사를 찾길 바라는 거죠.” 에센스가 정자 기증을 통해 임신을 시도하는 건 이번이 여섯 번째다. 좋은 결과를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를 다섯 번, 힘을 내 다시 도전한다고 했다. “정보는 전부 인터넷에서 얻었어요. 의료 쪽으로 교육을 받은 적은 없거든요.” 잠시 후 화장실 문이 열리고 아리가 나타났다. “컵은 세면대 위에 뒀어요.” 아리는 에센스가 정액을 주입할 수 있도록 내게 나가자고 재촉했다. 스마트폰을 보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 2시였다. 그에게 또 문자가 왔다. 그는 스마트폰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세상 어딘가에, 배란기를 맞은 여성이 또 있는 것이다.

에머슨을 낳은 날의 일레인 버드.

에머슨을 낳은 날의 일레인 버드.

2020년 6월, 일레인은 뉴욕에서 아리를 다시 만났다. 일레인은 자기 차의 비좁은 뒷좌석에 앉아 도넛 모양의 컵을 삽입했다. 임신은 되지 않았다. 그 무렵 일레인과 아리는 매주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해야 임신이 가능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주제였지만, 그냥 수다를 떨 때도 있었다. 일레인은 엠버 이야기를 했고, 아리는 자신의 많은 자녀와 그들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하기 편한 상대였던 것 같아요." 일레인의 말이다.

아리의 삶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아리에게는 주소지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체외수정 사이클에 맞춰 언제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집이나 호텔에서 잠을 잤다. 일주일에 이틀 밤은 첫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과 함께 지냈다. 나머지 두 명의 아내는 더 이상 아리와 크게 상관없는 사이로 보였다. 종교적인 여성과는 랍비에 의해 이혼했고, 해외에 거주하는 여성과는 엄밀히 따지면 여전히 결혼한 상태지만 그건 서류상일 뿐이다. 아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페이스북 그룹에서 모더레이터 일을 하며 일레인은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를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아리는 그중에서도 특이했다. 그의 정자를 통해 태어난 아이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점뿐만 아니라,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 중 많은 이들과 연락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거의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는 아이나 어머니도 있었다.

아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일레인은 그의 선택들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굉장히 속 편한 삶이에요. 궁극적인 미혼남의 삶이랄까요? 정해진 거주지가 아니라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지낸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어느 누구에게도 헌신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죠. 그는 많은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이고, 거기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버지에게 요구되는 책임을 다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있을 뿐.” 일레인과 아리는 7월에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루이스빌이었다. 이때쯤 일레인은 산부인과 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임신을 돕는 약을 복용하고 있었으나 아직 임신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리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계속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일레인은 페이스북 그룹에서 평이 좋은 다른 기증자들도 만나보기로 했다. 일레인이 바라는 조건은 세 가지였다. 아이가 당신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해줄 것, 1년에 한 번 아이의 생일에는 아이를 찾을 것 그리고 가끔 함께 여행을 떠날 것. 기증자들은 ‘좋아요! 뭐든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할게요!’라고 반응했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NI를 요구했고, 일레인은 그들이 섹스를 마친 뒤 사라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들과 비교하니 아리가 훨씬 나아 보였다. 최소한 아리는 함께 떠나는 여행 - 그에게는 공짜 휴가 - 을 거부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었다.

11월, 일레인은 한 번 더 아리와 시도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 약속 장소는 자연사박물관이었다. 아리는 약속 시간보다 2시간 정도 늦게, 자신의 친딸 두 명과 함께 나타났다. 아이들은 아리의 손을 하나씩 잡고 절대 놔주지 않을 것처럼 매달렸다. 딸들은 너무나 열렬한 눈빛으로 아리를 바라봤다. 일레인은 불안해졌다. 딸들은 공룡 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아빠의 관심에 집착할 뿐이었다. 아리가 도넛 모양의 컵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자, 아이들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안절부절못했다. 일레인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저 아이들의 엄마는 딸들을 조금은 더 강하게 키워야 할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사실, 자신의 애정을 그렇게나 잘게 나누는 아리 같은 남자는 항상 누군가를 굶주리게 할 수밖에 없다.

아리는 일레인에게 컵을 건넸다. 일레인은 컵을 받아 화장실로 들어갔다. 주사를 한 뒤 일레인은 다리를 든 채 잠시 앉아 있었다. 문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괜찮으세요?” 일레인은 아무 문제 없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2주 후, 생리가 없었다. 일레인은 드디어 임신이 됐다는 것을 확신했다.

미드타운에 다녀온 다음 날, 아리와 나는 퀸스에 있는 그의 친구 집에서 만났다. 유대인 축일이었기에 그의 친구는 금식 중이었지만 아리는 거리낌 없이 햄버거를 먹었다. 아리는 지금도 부모와 사이가 좋은 편이지만, 부모는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대놓고 비판하기도 한다. “왜 그냥 평범하게 살지 못하니?” 아리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관심을 충분히 주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자책했다. 어머니는 아리가 가족에게 수치를 준다고 말했다. 아리는 자신의 정자를 통해 태어난 수십 명의 아이들을 자신의 부모와 이어주려고도 해봤지만, 그의 부모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내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내 아버지보다는 나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네요.” 아리의 말이다.

세상도 늘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아니다. 〈뉴욕 포스트〉 기사가 나간 후, 뉴욕주 보건부는 그에게 무허가 정자 은행 운영이 불법이라는 서한을 보냈다. 다행히 그 뒤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2018년에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정자 기증을 금지당했다. 그의 정자를 기증받은 사람 중에 이스라엘 국민도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 ‘기증자들은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법 조항을 인용하며 금지 처분을 내린 것이다. 아리는 자식이 수십 명에 달하지만, 자신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스라엘 대법원에까지 항소했지만 패소했다. 이스라엘 보건부 장관은 전국 병원에 보관 중인 아리의 냉동 정자를 모두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에도 아리의 정자를 원하는 여성들이 있다.

아리는 자신이 보기에 불공정하거나 논리적이지 못한 법은 어길 의사가 있다고 인정했다. 사실 법이라는 것 자체가 이성애, 핵가족 등 특정 형태의 가족을 권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거기에 들어맞지 않으면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고, 돈도 많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정자를 기증받기 원하는,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보다 간단한 절차를 밟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뭐든 하고 있다. 상대 여성과 동거 중이라는 선서 진술서에 서명하거나, 은행 계좌를 공유하기도 했다. 이런 편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게, 파트너가 아니라 기증자라고 말할 경우 온갖 제약이 있기 때문이었다. 의료 검사도 받아야 하고, 심리 카운슬링에 어떤 경우는 변호사와 상담도 진행해야 했다. 아리가 유명세를 타며 이런 편법조차 더욱 까다로워졌다. 미국 내 병원들이 그의 계략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 여성들에게 자신을 잘 모르는 병원에 가라고 충고했다.

아리는 자신의 생활이 일레인의 생각만큼 ‘속 편한’ 것은 아니라고 털어놨다. 일단 그는 경제적으로 꽉 묶여 있다. 그의 아이 아홉 명을 낳은 여성 다섯 명이 그에게 자녀 양육비 소송을 걸었다. 강의를 통해 버는 미미한 수입의 절반은 양육비로 압류된다. 그렇다고 그들의 형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익명으로 정자를 기증하면 양육권 관련 고소에 얽힐 일이 없다. 하지만 아리처럼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기증에 나설 경우, 그런 보호 장치가 없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기증자에겐 양육의 책임이 없다’는 내용의 합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 기증을 받은 한 커플을 위해 자동차 구입 자금 대출에 보증을 서줬다가 그들이 잠적하는 바람에 8000달러를 대신 내준 적도 있다. 이 때문에 기증 상대를 좀 더 신중하게 고르라고 부탁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노숙자 보호소에 사는 18세 여성에게는 정자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다. 페이스북 그룹의 다른 기증자들은 혹시나 얽힐지 모르는 양육비 소송이 걱정돼 기증 전에 여성의 급여명세서나 통장 잔고를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리는 어머니의 ‘조건’을 판단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느꼈다. 위에서 언급된 노숙자 여성은 임신을 한 뒤 형편이 훨씬 좋아졌다. 결혼도 했고, 지금은 둘째를 임신했다. 도리어 아리는 자신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과 그 가족들 모두를 금전적으로 도울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가끔 슬프다고 말했다.

이런 아리의 호의적인 태도는 종종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2019년에 아리는 한 미국 여성에게 정자를 기증했는데, 그 여성은 가나에 사는 대리모를 통해 대리 출산을 하려 했다. 일이 진행되던 중에 팬데믹이 터졌다. 아이는 2020년 5월에 가나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여성은 아이를 데리러 갈 수가 없었다. 몇 달 뒤 마침내 가나에 방문했지만, 당국은 그녀가 생모가 아니므로 함께 가나를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매일 아리에게 전화를 걸어 가나에 와서 도와달라고 애걸했다. 아리는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다.

아리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으로 키나 수학 능력을 꼽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그의 장점은 ‘성격’이다. 그는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가끔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 걱정이 없어 보인다. 그가 들려주는 여러 일화는 인간이 자연스러운 힘에 맞설 때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슬쩍 보여준다. 섹스, 아기, 가족, 돈.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 아리가 있다. 표면 위를 돌며, 그 모든 것에 둘러싸여 있지만 직접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의 가족은 그를 사랑하지만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아리는 자신에게 감사하는 사람들, 자신에게 애정을 퍼붓는 아이들을 주위에 두고 있다. 정자 기증의 세계 밖에서의 아리는 수상하고 이상한 사람이지만, 정자 기증의 세계에서 그는 자애로운 남성이며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많은 환영을 받을 수 있었다. 종종 그는 넓게 사랑할 수 있지만, 깊이 사랑할 수는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느낀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자신의 단점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낸 셈이다.

나와 아리는 할렘에서 데빈 빅스-밴더호스트와 숀 밴더호스트를 만났다. 그들은 따뜻하고 장난기 넘치는 레즈비언 커플이었다. 그들의 딸 카리-아비아는 네 살이며, 아리의 정자를 통해 태어났다. “아빠!” 카리-아비아는 아리가 들어오자마자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카리-아비아와 놀기 위해 센트럴 파크로 걸어 나가는 동안, 아리는 코네티컷에서 기증을 받으러 오는 3인조 레즈비언 커플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기증 장소는 데빈과 숀의 화장실이 될 예정이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에요.” 데빈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 친부, 그리고 신생아.

엄마, 친부, 그리고 신생아.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데빈과 숀은 아리의 정자를 통해 아이를 얻은 부모들과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그들은 서로의 자녀를 ‘조카'라고 불렀다. 페이스북 그룹 안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기 위해 약속을 잡고, 생일 파티를 함께 하고, 같이 여행을 가기도 했다. 새로 엄마가 될 여성을 위한 베이비 샤워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늘 서로를 도우려고 해요. 바깥세상엔 우리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하지만 이건 특별한 일이죠.” 데빈의 말이다.

나중에야 아리가 출연한 〈닥터 오즈 쇼〉를 보게 됐다. 닥터 오즈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리에게 “당신의 행동은 ‘사회의 구성 요소’인 가족을 ‘뒤틀고’ 있습니다”라고 비난했다. 가족이 무엇인지, 누가 재단할 수 있을까? 닥터 오즈에게 묻고 싶어졌다.

공원에서 아리가 카리-아비아와 함께 뛰어다니며 노는 동안, 데빈과 이야기를 나눴다. “저는 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라요.” 최근에야 컴퓨터를 잘 다루는 숀을 통해 데빈의 외할머니를 찾아낼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살아 있었고,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데빈은 외할머니의 91번째 생일 파티에 참석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동안 떨어져 지낸 세월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데빈은 카리-아비아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살길 바라지 않았다. 정체성의 중심에 물음표를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아리는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죠. 우리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그의 책임을 다해요.” 데빈은 아이들에게 물풍선을 나눠주는 아리를 흘끗 쳐다봤다. “카리-아비아는 아리가 다른 아빠들과 다르다는 걸 이해해요. 집에 함께 살지 않으니까요. 아리에게 다른 아이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빠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아리가 와줄 거라는 것도 알죠.”

그때, 3인조 커플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아리는 전화에 대고 외쳤다. “아, 저 공원에 있거든요. 여기로 오세요. 제가 벤치 위에서 할게요. 벤치 위에서 아기를 만들죠, 뭐.” 연신 그 장난스러운 말투였다.

3인조 커플은 뉴욕 도시교통공사에서 일하는 버스 기사 라케이샤 듀크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여자 친구였다. 그들은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우리는 다 함께 아파트로 들어가 아리가 사정하기를 기다렸다. 라케이샤는 벽에 걸린 카리-아비아의 대형 사진을 보곤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전에도 연인의 아이를 함께 양육해봤지만, 관계가 끝나니 아이와의 연결도 끊어지더라고요.” 라케이샤가 씁쓸한 듯 말했다. 연인이 낳은 아이 대신,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때였다.

그러나 라케이샤 본인이 남성적인 모습을 하고 다녔기에, 임신을 하면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보일지가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가 마흔한 살 생일을 맞이했다. 라케이샤는 드디어 결심을 내렸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 모습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아리가 그녀에게 컵을 건넸다. 라케이샤의 아내가 그녀를 데리고 차로 이동했다. 그들은 이미 뒷좌석에 푹신한 쿠션과 섹스 토이가 놓인 안락한 둥지를 만들어둔 상태였다. 오르가슴을 느끼면 정자가 난자까지 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라케이샤가 돌아온 뒤 데빈이 웃으며 말했다. “아리가 우리 집 화장실을 사용해 당신에게 도움을 준 건, 우리 사이에 연결 관계가 있다는 거예요.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 있어요. 아마 우리처럼, 당신도 아이를 갖게 될 거예요.” 모두가 웃었다.

일레인은 8월 초에 제왕절개를 받기로 했다. 아리와는 매주 이야기를 나눴지만, 주된 주제는 임신이었고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쉽게 임신한 편인 거예요!” 같은 말들 뿐. 일레인은 웃고 싶기도, 울고 싶기도 했다. 일레인은 그사이 교통사고가 나서 몇 주 동안 누워 지내야만 했지만, 아리에게 그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아리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아리는 전몰장병 추모일에 엠버 그리고 쌍둥이 친척들과 놀아주겠다고 약속했고, 일레인은 그가 묵을 호텔 방을 잡아주었다. 만나자마자 아리는 물풍선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샀다. 물풍선이 터질 때마다 아리는 아이들만큼이나 큰 소리로 웃었다. 아이들과 실컷 놀아준 뒤 아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사방에 풍선과 피자가 놓인 채였다. “그게 그의 삶이에요.” 일레인의 말이다.

아리는 아이가 태어날 때 옆에 있고 싶다고 했지만, 일레인은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분만실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는데, 정식 파트너가 아닌 아리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규정에 걸려 입장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일레인은 혼자 아이를 낳아야 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일레인을 만난 곳은 그녀가 일하는 샌드위치 가게였다. 그녀는 임신 8개월 차였고 늘 그랬듯 바빴다. 손님이 없는 사이, 엠버는 나에게 올해 또 있을 ‘예쁜 아이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엠버는 손재주를 활용한 속임수나 재주넘기 같은 개인기를 연습 중이었다. 그때 일레인의 어머니가 엠버를 성경학교에 데려가기 위해 가게를 찾았다. 일레인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떠난 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일레인은 “임신 사실을 아직 어머니에게 밝히지 않았어요”라고 털어놨다. 나는 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임신 과정을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어쩌면 어머니는 알면서도 아무 말도 안 한 걸 수도 있어요. 내가 그냥 살이 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일레인은 소방서에서 아이를 위한 카시트를 설치해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와 일레인은 월마트에서 기저귀를 산 뒤 동네 소방서에 들렀는데, 카시트 설치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일레인은 개의치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리는 성경학교를 방문해 엠버를 픽업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제 동생의 아빠예요.” 엠버가 진지하게 말했다. 일레인이 낳을 아기는 아들이었다. 아직 그녀는 아들의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아리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짓는 여성들도 있었다. 아리에라, 아카리, 아리아나 등. 또는 아리의 미들네임인 ‘리(Lee)’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일레인은 출산 시 아리가 병원을 찾을 경우, 병원에서 출생증명서에 서명을 요구할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아리는 지금껏 출생증명서에 여러 차례 서명했지만, 일레인이 걱정하는 건 다른 이유에서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고, 너무 가까워지는 상황이 생길 것 같기도 해서다. “저는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일레인이 말했다.

몇 주 뒤 아리는 일레인의 거주지로 날아왔다. 배려심 깊은 그는 새벽 2시에 도착했지만 일레인을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아 집에 들어가진 않았다. 일레인의 집 앞에 렌터카를 세워둔 채 그 안에서 잠을 잔 것이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그들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일레인의 걱정과는 달리, 아리는 병원에서도 평온하면서도 섬세한 모습이었다. 아리는 일레인의 스마트폰이 충전돼 있는지를 확인했고, 일레인에게 투여한 약이 무엇인지 기록했으며 부작용이 무엇인지 담당자에게 물었다. 그는 일레인이 편안한지 지속적으로 확인했다. 아리가 없었다면 일레인은 진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을 부부라고 생각한 간호사가 아이가 몇 명 있냐고 묻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전 아이가 90명인데요?” 아리의 말에 간호사는 마치 들어본 적이 있는 대답인 것처럼 키득댔다.

아리는 마흔여섯 살이 됐다. 그는 곧 정자 기증에서 은퇴해야 할 나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마흔여섯 살 이후 아이 갖기를 포기했다. 정자의 질은 나이가 들수록 저하된다. 즉 그의 2세들이 선천적인 결함을 가질 위험성이 점점 높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가 정자 기증에서 은퇴하고 나면, 새로운 아이들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가 잉태시킨 생명들은 쑥쑥 자라날 것이다. 열심히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대신, 이젠 느긋하게 이미 태어난 생명들을 살펴볼 시간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100명의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거다.

일레인은 당연히 아리가 분만실을 찾은 경험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다 알 거라고 생각했어요. 무려 아이가 90명이나 되잖아요. 처음 와보는 사람처럼 그렇게 흥분할 줄은 몰랐죠.” 그날 오후 5시 17분, 건강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체중이 4kg이나 됐다. 아이를 본 아리는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코가 작다, 크면 운동선수가 될 것 같다, 머리숱이 많다, 구구절절 떠들어댔다. 다음 날 아리는 또 다른 아이를 만나러 떠났다. 떠나기 전, 그는 일레인에게 출생의 순간에 더 많이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건 대단한 경험이었어요.” 아리의 눈이 빛났다.

퇴원할 때까지, 일레인은 아이의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몇 시간 뒤에야 일레인은 아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름을 정했어요 - 에머슨 리 네이글 버드!”


[관련기사]
생물학적 친자만 90명인 '정자 기증왕'의 이야기 part.1 보러가기


WRITER RACHEL MONROE PHOTOGRAPHER ANDREW HETHERINGTON TRANSLATOR 이원열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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