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왜 화성에 가려 하는가?

인류는 왜 화성에 가려 하는가?

에스콰이어 2021-04-10 17:00:00 신고



인류는 왜 화성에 가려고 하는가?


지난 2월 18일 화성 착륙선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가 무사히 화성 표면에 연착륙했다. 지구에 다양한 시간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이 착륙 장면을 손꼽아 기다리고, 성공 소식에 환호했다. 1969년 달에 처음 인류가 발을 디뎠던 그 순간보다 흥행은 덜 되었는지 몰라도, 여전히 가슴 설레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우주 개발 속도는 왜 이리 더딘가? 50년 전에 달에 사람을 보냈는데 지금쯤이면 어디서 외계인쯤은 찾았거나 진작에 태양계 어느 행성으로 이주를 시작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화성에 착륙선은 보내서 대체 무엇에 쓰는가? 자,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우주로 가겠다는 야망

화성 시간으로 1065일째 활동 중인 큐리오시티 로버의 모습. 해당 이미지는 영화감독 토마시 미엘니크가 합성해 만든 파노라마 실사다.

화성 시간으로 1065일째 활동 중인 큐리오시티 로버의 모습. 해당 이미지는 영화감독 토마시 미엘니크가 합성해 만든 파노라마 실사다.

유체역학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유체역학은 유체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유체란 ‘흐를 수 있는 물체’이다. 가장 흔하게는 ‘물’과 ‘공기’가 유체이며, 유체 중에서도 물은 ‘액체’, 공기는 ‘기체’다. 유체역학은 15세기경부터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항해 시대라고 불리는 대략 15세기부터 18세기의 시대적 배경과 함께한다. 유럽의 배들이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을 하던 시기 말이다. 항해를 하려면 당연히 배가 필요하다. 더 멀리 항해하려면 잘 만들어진 배가 필요했을 것이다. 배를 잘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는 물 위를 움직이니, 배로 인한 물의 움직임과 배와 물의 움직임을 알아야 했을 것이다. 과학기술은 때로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발전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세계는 냉전체제로 돌입했다. 미국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큰 두 개의 축이 생겼다. 두 체제는 거의 모든 것을 두고 경쟁했지만, 그중 두드러지는 경쟁은 우주 경쟁이었다. 미국과 구소련은 각자 체제의 뛰어남을 증명하기 위해

자, 우리는 우주에도 간다

고 먼저 소리치고 싶어 했다. ‘스페이스 레이스(Space Race)’로 불리는 미-소 양국 간의 우주 개발 속도 경쟁 덕에 어마어마한 자본과 인력이 우주 개발에 투입되었다. 이 결과로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가 1957년에, 연이은 미국의 첫 위성 익스플로러(Explorer) 1호가 1958년에 발사되었다. 미연방항공우주국(NASA, 이하 ‘나사’)의 설립 연도가 1957년인 것은 이 시대적 배경과 함께한다. 미국은 이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였다. 일단 우주로 무엇인가를 보내는 데 성공한 양국의 다음 목표는 이제 ‘인간을 달로 보내는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미국의 ‘아폴로 계획(Apollo Program)’이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이 아폴로 계획의 ‘아폴로 11호’가 처음 인간을 달로 데려다주었다. 1969년, 닐 암스트롱 (Neil Armstrong)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의 표면을 밟았다. 인류가 우주 공간에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내보내본 지 딱 12년 만의 쾌거였다.

이 시대의 우주 개발 속도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1900년대 초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사람들은 마차를 타고 다녔는데, 전쟁을 두 번 거친 후 몇십 년 사이에 인간은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건너는 것을 넘어 급기야 우주로 가게 된 것이다. 대부분 과학기술 개발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초기 우주 개발 단계에서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자본이 들어간다. 국가 차원에서 작정하고 예산을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이 속도의 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사의 1966년 예산은 미연방 정부 총 예산의 4.41%였다.



야망이 가져다 준 것들

1971년 5월 20일 바이킹 착륙선에 달린 토양 샘플링을 위한 장치를 확인 중인 나사 기술자의 모습.

1971년 5월 20일 바이킹 착륙선에 달린 토양 샘플링을 위한 장치를 확인 중인 나사 기술자의 모습.

연구에는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야 연구 공간을 구하고, 실험 장비-그게 100억짜리 진공 체임버이든 1000만원짜리 컴퓨터이든 1000원짜리 연필이든-를 사고, 연구를 함께 해주는 동료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다. 돈이라는 재화는 한정되어 있어, 모든 연구자에게 갈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각 분야의 수많은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실에서 때로는 논문보다 더 절실하게 연구계획서를 쓴다.

내 연구는 단기적 또 장기적으로 이러저러한 쓸모가 있으니까 꼭 너희가 돈을 주었으면 좋겠다. 너희가 나와 나의 팀에게 돈을 준다면 우리는 이러저러한 연구에 꼭 성공해 결과를 낼 것이다

라고 길고 자세하고 간절하게 서술하는 탄원이다. 보통의 연구자라면 연구계획서를 열 번 내면 한 번 될까 말까 하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항공우주 분야는 어떠했을까. “돈이 얼마나 드는지는 물어보지 말고, 일단 만들어와. 비용은 정부 차원에서 모두 지급한다”라는 분위기가 아니었겠는가? 연구자들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 배경은 비록 냉전과 체제 경쟁이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투자한 어마어마한 자본이 결국 훗날 우주 개발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나사의 시작이 되었다. 이때 전 세계에서 수많은 과학자가 미국으로 모였고, 많은 제반 기술이 만들어지거나 잉태되었다.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처음 발을 디딘 그 장면은 전 세계로 방영되었다. 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회복과 개발의 일로를 달리던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어느 시골에서도 동네 이장님 집에서 흑백 텔레비전으로 동네 사람들과 그 장면을 함께 보았다는 이야기를 어느 어르신에게 들은 적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 뒤로 50년 동안, 전 세계로 착륙 장면이 동시에 방영될 정도의 빅 이벤트는 없었다. 그렇기에 요즘에는 ‘우주에 안 가나요?’라고 묻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1950~1960년대 당시만큼 엄청나게 돈과 자원을 투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주로 가기 위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대답하겠다.



화성에 가기 위한 노력의 역사

1975년 8월 21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캐너버럴 공군기지에서 바이킹 탐사선을 실은 타이탄 3가 발사되는 모습.

1975년 8월 21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캐너버럴 공군기지에서 바이킹 탐사선을 실은 타이탄 3가 발사되는 모습.

그때 달이었다면, 지금은 화성이다. 왜 화성인가? 화성은 본격적으로 탐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생명체가 그나마 살 수 있을 만한 가능성이 큰 태양계 내 행성으로 손꼽혀왔다. 나사는 화성을 달 유인탐사 성공 이후 다음 유인탐사지로 정했다. 인간을 어딘가로 내보내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일단 인간이 그곳에 가서 안전하게 살아 돌아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당연히 단계를 나누어 준비를 한다.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대개는 먼저 위성을 보낸다. 위성을 보내서 목적지 주변을 빙글빙글 돌게 하면서 사진을 찍는 등의 미션을 수행한다. 이것을 보통 궤도선(Orbiter)이라고 한다.

그다음 단계가 충돌선(Impactor)이다. 표면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은 확인했으니, 표면에 충돌해서 산산조각이 날 비행체를 보낼 차례다. 충돌선은 충돌해 부서지기 전까지 표면 근처의 모든 정보를 모아서 지구로 보낸다. 그다음 마지막 단계가 착륙선(Lander)이다. 목표 지점에 안전하게 사뿐히 앉아야 하는 미션 ‘연착륙(Soft Landing)’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이전 단계에 비해 난도가 월등히 높다. 사람을 실은 비행체를 표면에 충돌시킬 순 없으므로 이 연착륙은 인간을 화성에 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단계다. 일련의 과정이 문제없이 진행되어 사람을 목표 지점에 보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 마지막 단계로 유인탐사를 진행한다. 다만, 달탐사에서는 일련의 과정이 많이 생략되었는데,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스페이스 레이스 때문이다. 미-소 양국의 극악한 속도 경쟁으로 차근차근 뭘 보내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니 사실, 달탐사는 인간의 목숨을 건 거의 도박에 가까운 시도였으며, 그 성공은 거의 기적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화성탐사는 달탐사에 비하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인류가 화성 표면으로 처음 무엇인가를 보낸 것은 1975년 ‘바이킹 계획(Viking Program)’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닐 암스트롱을 태웠던 아폴로 11호가 1969년에 달에 착륙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화성탐사의 시초는 달탐사의 시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셈이다. 처음엔 화성 착륙선 바이킹호를 탑재한 궤도 진입용 우주선을 화성궤도선에 붙여 화성 근처로 보냈다. 이 궤도선이 화성 주변 궤도를 돌다가, 바이킹호를 담은 우주선을 궤도선에서 분리시킨다. 그냥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렇게 분리된 궤도 진입용 우주선은 화성의 중력에 의해 화성 표면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자유낙하 한다. 얼마나 빠르냐 하면, 대략 시속 7500km 정도의 속도다. 게다가 빠르게 진입하는 이 우주선이 화성의 대기를 만난다. 우주선 입장에서는 주변을 둘러싼 기체 밀도가 급격히 바뀐다. 그 충격의 양상은 강하게 던진 공이 벽에 부딪히는 것과 흡사하다. 우주선은 대기를 뚫고 들어가게 되면, 우주선의 표면과 주변 대기와의 마찰이 급격하게 올라가고 우주선 표면의 온도 역시 급상승해 대개는 진입체가 녹아 없어져버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지구의 대기로 진입하려다 불타 없어지는 크고 작은 돌덩어리들. 즉 유성들을 생각해보면 쉽다. 그 유성들이 어디 지구 표면으로 쉽게 떨어지든가?

이는 사실 지구가 지구로 돌진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돌덩어리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극악한 환경에서 바이킹이 녹지 않게 하려면 세밀한 열보호 설계가 필요했다. 그렇게 녹지 않고 화성의 대기를 무사히 뚫었다면 그다음엔 화성의 표면에 사뿐히 앉아야 했다. 바이킹호가 사용했던 방법은 화성 표면 근처에 다가서면 역분사 로켓을 발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화성 표면에 무사히 앉은 바이킹은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화성 표면의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했다. 인류가 최초로 얻은 화성 표면의 자세한 사진은 이때 얻었다.



#39;요기 바위#39;를 조사 중인 패스파인더 미션의 소저너 로버의 모습. 소저너 로버에는 알파 프로톤 X레이 분광기(APXS)가 장착되어 있다.

#39;요기 바위#39;를 조사 중인 패스파인더 미션의 소저너 로버의 모습. 소저너 로버에는 알파 프로톤 X레이 분광기(APXS)가 장착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람을 보낼지 말지를 결정하기엔 아직 화성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도 적었다. 1996년엔 착륙선에 인류 최초의 로버를 실어 발사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마르스 패스파인더(Mars Pathfinder)’에 화성 표면 위를 움직일 수 있도록 바퀴를 단 로버 소저너(Sojourner)를 실었다. 소저너는 화성 구석구석을 다니며 1만6500장에 달하는 표면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했다. 뿐만 아니라 화성의 대기 압력·온도·풍속 등 정말로 화성을 누비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관측 데이터도 보냈다. 이로써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었던 화성 표면에서의 정보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다음이 2003년 MER(Mars Exploration Rover) 미션이다. ‘오퍼튜너티(Opportunity)’와 ‘스피릿(Spirit)’ 쌍둥이 로버를 보냈다. 각각의 로버는 화성의 다른 곳에 착륙하여 화성을 누비는 임무를 맡았다. 이 미션의 목적은 화성 표면의 돌멩이나 모래 등을 조사하여 과거에 물이 화성에 존재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두 로버에게 주어진 임무 기간은 90일이었다. 그런데 90일이 지나도 두 로버는 생을 다하지 않고 활동했다. 심지어 배터리 수명과 주요 기능들이 몹시도 정상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로버의 수명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 즉 배터리였다. 배터리는 로버에 달려 있는 태양전지를 통해 계속 충전되었다. 화성 표면은 사막같이 모래와 먼지가 가득하여, 움직이는 로버의 등에 붙어 있는 태양전지판에 그득 올라앉는다. 그렇다면 태양전지판에 먼지가 자꾸 끼니, 충전이 잘 안 되고, 그 때문에 배터리의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고, 그렇게 서서히 동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나사는 예상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화성에 바람이 무지하게 분다는 사실이다. 이 바람이 태양먼지판에 올라앉은 먼지를 ‘청소’하는 효과를 발휘하며 나사의 예상보다 훨씬 오래 충전이 가능한 상태로 지속됐다. 나사는 움직일 수 있는 데까지 두 로버를 운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스피릿은 2010년까지 총 2623일 동안 미션을 수행한 후 사망했고, 오퍼튜너티는 2018년 6월 화성에 유례없이 거대한 모래 폭풍이 있었던 때를 버티지 못하고 지구와 교신이 끊어졌다. 오퍼튜너티는 장장 5352일의 대장정, 예상된 90일보다 60배에 가까운 시간을 버틴 것이다. 오퍼튜너티는 그 기간 동안 45.16km를 움직이며 22만4642장의 화성 표면 사진을 지구로 전송했으며, 물이 있어야만 생성될 수 있는 미네랄 물질을 발견했다.

다음은 2011년의 MSL(Mars Science Laboratory) 미션의 로버 ‘큐리오시티(Curiosity)’다. 이전까지의 로버들 크기는 강아지만 했다. 그러나 이 로버는 소형차만 한 크기다. 로버가 커지자 더 많은 과학 장비를 로버에 달 수 있었다. 과학이 이렇게나 발전했는데 화성에 고작 소형차만 한 로버밖에 보내지 못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무게’에 주목해서 생각해보라고 답해주겠다. 우주 미션에서 무게는 1g단위로 예산을 책정해야 할 만큼 다 ‘돈’이다. 이 무게를 줄이려고 온갖 아이디어들이 나온 이유다. 화성 착륙까지 무조건 안전하게 사수해야 하는 로버가 이렇게 무거워지고 커지면, 이 아이를 끝까지 살리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진입 캡슐은 더 큰 힘과 열을 받을 것이다. 열보호 설계 역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정도로 크게 바뀐다. 이래서 화성에 사람 보내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사람을 보내서 임무를 수행하고 살려서 지구로 귀환시키려면 가져가야 할 것(먹을 것, 입을 것, 잘 곳 등등)이 얼마나 많겠는가. 거기다 화성은 달보다 훨씬 멀다. 어쨌든, 2년으로 예상했던 큐리오시티의 임무는 2012년 ‘무한대’로 연장됐다. 앞선 오퍼튜너티도 15년 임무를 수행한 마당에 큐리오시티라고 못 할 게 무엇인가. 2021년 현재도 큐리오시티는 멀쩡히 임무 수행 중이다.



그리고 ‘인내’

2011년 8월 13일 캐이프 케너버럴에 있는 나사의 케네디 스페이스 센터에서 점검 중인 큐리오시티의 모습.

2011년 8월 13일 캐이프 케너버럴에 있는 나사의 케네디 스페이스 센터에서 점검 중인 큐리오시티의 모습.

지난 2월 19일, 화성에 착륙한 로버 ‘퍼서비어런스’는 한국말로 ‘인내’라는 뜻이다. 이 미션에는 두 가지 특별한 시도가 담겼다. 첫 번째는 ‘인제뉴어티(Ingenuity)’라 불리는 드론이 장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최초로 다른 행성에 날린 동력 비행체이다. 이 드론은 로버의 또 다른 눈이 되어 로버의 주행을 돕도록 설계되었다. 화성의 대기는 지구의 대기에 비해 훨씬 희박하기 때문에 드론이 로터를 돌려 양력(뜨는 힘)을 얻기가 힘들다. 따라서 몸체를 가볍게 하고 로터의 회전수를 더 높여 강한 힘으로 양력을 얻어내는 구조로 디자인되었다.

두 번째 시도는 놀랍게도 화성의 토양을 지구로 가져오는 일종의 ‘귀환 미션’이라는 점이다. 이 로버 앞에는 포크레인처럼 드릴이 달려 있고, 이 드릴로 화성의 흙을 파서 미리 탑재된 튜브에 담는다. 이 튜브를 로버의 배꼽에 있는 저장소로 옮겨 밀봉 작업을 한다. 튜브에 담긴 샘플이 그 어떤 것에도 오염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퍼서비어런스는 이 튜브를 배꼽에 꼭 담고 주어진 다른 미션들을 수행하다가, 적당한 시간과 장소를 지구에서 지정하면 그곳에 가져다 놓는다. 물론 이 위치는 칼같이 기록될 것이며, 훗날 지구에서 보낸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 샘플을 가지러 갈 예정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가져올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나사와 유럽우주국(European Space Agency)이 함께 이 샘플을 가지러 가는 미션을 준비 중이다. 목표는 2030년이다. 2030년에 계획대로 이 샘플이 지구로 배달되어 온다면, 우리는 화성의 토양과 화성의 과거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여전히 현재 진행형

퍼서비어런스가 화성의 표면에 가닿으며 연착륙을 위해 역추진 엔진을 작동하는 모습을 그린 가상의 이미지. 퍼서비어런스의 최우선 목표는 고대 미생물을 포함한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일이다.

퍼서비어런스가 화성의 표면에 가닿으며 연착륙을 위해 역추진 엔진을 작동하는 모습을 그린 가상의 이미지. 퍼서비어런스의 최우선 목표는 고대 미생물을 포함한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일이다.

지난 70년 동안 우주에 대한 인류의 도전은 놀라운 결과를 안겼다. 고작 70년 만에 우리는 곧 화성에 사람을 보낼 수 있을 만큼의 기술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왜 그렇게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 우리가 화성에 가려 하는 거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우리는 저 광활한 우주에 우리 말고도 누군가가 살아 있음을 믿고, 그들을 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인간은 우리 존재의 시작을 원죄처럼 궁금해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왜 우리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된 것인지. 이 질문은 우주의 근원을 찾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만약 저 넓은 공간에 우리 말고 생명체가 있다면, 만약 그들도 문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과거 혹은 우리의 미래 혹은 또 다른 우리의 현재일 수도 있기 때문일 테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당장은 화성을 목표로 삼았다. 현재까지의 탐사 결과로 보면, 지금 당장에는 화성에 살아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큐리오시티 로버가 찍어 보내준 사진에 따르면 과거에 물이 흐른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과거에 생명체가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단서다. 곧 화성에 인간을 보낼 것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달 혹은 화성으로 인간이 이주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을 전진기지 삼아 더 멀고 깊은 우주탐사를 떠날 것이다.

그럼에도 '거기 뭐 하러 가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이 모험의 ‘환금 가능한 가치’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 대한 답도 물론 할 수 있다. 냉전시대와 마찬가지로 화성에 가기 위해 다하는 노력이 상당한 수준의 공학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답할 수는 있겠다. 체온이 40도만 넘어도 생사를 넘나드는 ‘인간’을 화성까지 싣고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개발해야 하는 기술들 말이다.

잘 알려진 예로는, 우주복이다. 우주인이 입는 우주복은 지구 위보다 훨씬 더 가혹한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 달의 최고 온도는 섭씨 120도가 넘고 최저 기온은 영하 180도까지 내려간다. 이를 위해 고온에서 견디는 방열 폴리스티렌이 개발되었고, 이 소재는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 다른 예로는 현재 개발 단계에 있는 하이퍼 루프(Hyper Loop)라고 불리는 고속열차가 있다.

하이퍼 루프는 거의 진공 상태의 튜브(관) 안을 빠르게 움직이도록 설계된 고속열차이다. 관 안이 거의 진공 상태이므로 공기와 열차 표면과의 마찰이 줄어들 것이다. 대략 시속 1200km 이상의 속도를 낸다. 서울과 부산을 15분가량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은 화성탐사에서 화성 대기 진입 시의 기술과 유사한 기술이다. 화성 진입 시에 우주선은 희박한 대기를 빠른 속도로 날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어떤 기술이든 우주탐사에 접목해야 한다는 말은, 극악한 환경 혹은 우리가 지금까지 전혀 접해보지 못한 환경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 된다. 무엇을 하든 그것이 처음일 가능성이 높다. 우주 개발이 활발하게 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기술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돈이 되는 기술’을 위해 우주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주는 대단히 넓고,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 ‘저 멀리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요. 혹시 거기에 우리 같은 사람이 살고 있을까요?’ 일곱 살짜리 어린이의 외침 같은 이 단순하고도 귀여운 문장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모르는 것은 여전히 산더미같이 많아서, 우리는 여전히 궁금하고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한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가 연구실에서 컴퓨터 앞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우리의 궁금증과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한 노력이 멈추지 않는 이상, 저 멀리 우주의 비밀들도 하나둘 베일을 벗을 것이다. 그것으로 얻는 것은 정치적 선전도, 부유함의 자랑도, 파생연구의 환금성도 아닌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나요?

하는 근원적인 질문의 답 말이다.



Who’s the writer?
항공우주공학자 전은지는 2012년 미시간대학교에서 항공우주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독일 항공우주센터,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대학교와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희박한 우주 공간에서 빠르게 흐르는 유동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현재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조교수로 있다.



EDITOR 박세회 WRITER 전은지 PHOTO 게티이미지스 코리아 DIGITAL DESIGNER 김희진

Copyright ⓒ 에스콰이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